[TravelLog__CUBA] 많이 배운다.

travelog/Cuba 2012. 10. 15. 05:29

 

cubana  



 

 

쉽게 화도 나고, 쉽게 이해도 되는..
여행은 인생의 요약판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가장 짧은 시간내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단 몇분내에라도 엄청난 감정이 요동치게 되기도 한다.
가장 적은 시간과 가장 적은 돈을 들여 가장 많은 경험을 살 수 있는 것,
책을 제외하고는 여행이 유일하지 않을까.

 

쿠바여행이 널널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This is Cuba라며 TIC를 나쁜 일이 생길 경우마다 욕처럼 사용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실제로 앙꼰해변에서 여권을 비롯한 지갑등 모든 것을 털린 여행자도 보았고,
불과 2주전 여권을 잃어버린 한국 여행자를 멕시코 영사관에서 픽업했다는 소리를 하바나 까사 주인에게 듣기도 했다.(비수교 국가인지라 여기서 여권 잃어버리면 진짜 골때린다)

 

 

  반면, 나만은 별일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이~라며 아름답게 쿠바를 마무리해 가고 있을 무렵 사건이 드디어 터졌다.

비행기 시간을 리컨펌하던 중 동행의 비행 스케쥴이 엄청 다르게 바뀐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밀려진 시간에 칸쿤발 보고타행 커넥팅 플라잇이 있어 곤란하게 된 상황이었다.
시간은 이미 늦어 하바나 신시가의 항공사 사무실은 문 닫았고 공항내 항공사 부스는 연락이 안되었다.
게다가 쿠바는 2G전화를 제외하고는 전화도 걸리지 않고 인터넷을 사용하는데도 제약이 많았다.
다행히 공항에 찾아가 슈퍼바이져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일이 많은지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게 없다며

(스케쥴 트랜스퍼조차 안된다는..)

언제 가든지 언젠가는 칸쿤에 널 데려다 줄거라며 기다렸다가 지들이 갈수 있을때 데려다 주겠다는 헛소리만 해댔다.
뭐, 거의 배째라는 수준? -.- this is cuba는 이럴때 쓰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그래, 뭐 언젠가는 비행기가 뜨긴 뜨겠지...
이런저런 경우가 하나도 안통하자 결국 칸쿤으로 돌아가는 방법대신 모든 비행기표를 포기하고
보고타로 들어가는 다른 항공편을 사려는데 이번엔 쿡으로만 결제가능하니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오란다.
한국에서 가져간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게되면 미국환이기 때문에 엄청난 환차손이 나게 된다.
결국 스스로 다른 방법을 찾아 어찌어찌 해결하긴 했지만,
미안하다거나 하물며 유감이라거나 이런 방법은 어떻겠냐는 제안이거나 어떤 말도 없이

그저 "몰라~~"로 일관된 분위기에 순간 거의 판을 뒤엎었다.

 

여행자가 절대 하면 안되는 것, 그 첫번째. 로컬과 분쟁.

 

사기꾼 난무하는 하바나에서 길에다 뿌린 택시비,

급박한 상황에 결제때문에 필요했던 인터넷 사용료등을 포함하면 거의 100 달러가 넘는 비용에,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포기할 타항공권 비용도 아까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즐거웠고 사랑한 이 나라의 마지막 기억을 실망으로 망칠까 무서웠다.
가장 강렬한 기억이 공항에서 항공사를 뒤엎은 사건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때 재밌는 일이 생겼다.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 돌아갈때 다시 타려고 아저씨를 잡아두고 있었다.

꽤 밤이었던지라 최선의 방법이었다.
근데 그 분이 꽤 유쾌한 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뭣때문에 공항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온 모양에 계속 신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치가 무지하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공항에서 판을 엎고 싸우는데 옆에서 계속 눈치만 보시더니,
화가난 친구가 씩씩거리며 공항에서 소리지르면서 앞에 걸어가는데 뒤에 따라 걷는 내게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뭐 잘 안되?"
"네,, 항공 스케쥴이 갑자기 바뀌어서 해결하러 왔는데 잘 안되서 제 친구 화가 났어요(she's angry)"
"아.. hungry..... 그래.. 배고파서 화났구나..."

순간,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다...
하하 미치겠다..
상황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래, 나쁜일 당한것도 아니고 그저 비행 스케쥴이 꼬였을 뿐인거다.
진정하고 밥먹고 정신차리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자며 돌아가기로 했다.
여행을 그렇게 오래 또 많이 했으면서도 아직도 대처가 미숙한 나를 다독이고 아저씨에게 돌아가자고 말씀드렸다.

 

"근데 아저씨 배도 고픈데요,, 화가 난거였어요,, 암브레(tenemos hambre pero ella esta enfadada hahaha)가 아니고요,,앰파다다(앵그리);;;"라 스패니쉬로 상황을 얘기해드렸더니..

"정말 미안해,, 쿠바가 여행하기 힘들지?"라면서 진짜 미안해한다.
그 말에 난 반사적으로 "아저씨가 미안할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쿠바나 항공은 싫지만, 쿠바는 사랑합니다."라고 결국 말하게 되었다.
말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정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상황을 해결할 힘도 주었다.

그래, 나는 쿠바가 좋았어. 쿠바 사람들도 좋았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까사에서는 후엔이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밥은 먹었냐며 빵과 바나나를 챙겨주고 
우리가 종일 정신없게 돌아다니느라 물을 못사 대신 마셔버린 맥주값을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으며 새벽까지 안자고 기다려 우리를 깨워 공항에 다시 갈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 뒤에 잠도 안자고 간 공항에서는 보고타행 비행기가 또다시 연착되어 그날 갈 수나 있을까 하기도 했지만!

 

결국 여행을 아름답게 하는것도 지저분하고 피폐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난 늘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할 것을 쿠바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물론, 그 "사람"에게 언젠가는 뒤통수 맞기도 하고 사기를 당할수도 있겠지만(비단 여행속에서만 아니고)

근본적으로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며 이런 나의 펄스널러티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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