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

lifelog 2021. 11. 22. 17:58

 

 

나의 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도 심지어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도 exit은 중요하다.

손실과 이익의 확정은 물론 이로 인해 내가 세운 가설의 결론을 볼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판단의 자리에 내리는 결정은 과거의 나+지금의 나,가 최선을 다해 내놓은 답이고 이에 대한 책임 또는 성취를 온몸으로 맞을 준비를 하고 exit을 하는거니까.

 

 

1.

주위에 운동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는 사실 몸을 쓰는데서 오는 쾌락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늘 땀 흘리는 운동이 좋아요,라고 얘기를 하고 다니는데 사실은 짧은 시간에 효율이 극대화된 운동을 좋아하는거다. 수영, 검도, 테니스, 계단오르기 같은 운동을 주로 많이 하고 자전거는 한번 타면 적어도 50킬로 이상 탄다. 

 그래서 이와 대척점에 있는 골프는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간 권유하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핑계로 땀흘리는 운동을 선호한다,하고 주로 거절하다 지난 1년 회원권을 끊고 필드를 다녔다. 좋았던 점은 눈이 시원한 곳에 사람이 붐비지 않은 곳을 산책한다는 점과 떡볶이가 진짜 맛있었다는 것이고 별로였던 점은 좋았던 점 빼고 전부 다였다. 회원권을 연장하지 않기로 exit하면서 조금도 망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부쩍 20~30대가 필드에 많이 보였는데 대체 어떻게 저런 시간을 낼까, 자신의 진짜 인생에는 관심이 없나? 내 시간의 가치가 남의 것과 같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내 시간의 값어치를 비싸게 매겨줘야한다. 

 

2.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거나 뭔가 풀리지 않을 땐 묻고 따지지 않고 그 '국박'으로 간다. 입구로 향하는 계단의 대나무 길을 지나 신라관의 금관을 보고 나와 용산방향을 보고 뒤뜰에 앉으면 바람이 뇌를 그대로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몇년 전 미국에서 돌아오기 직전 국박 건너편 한강변에 집을 샀다. 비록 한강은 안보이지만 걸어서 국박까지 10분 내외에 번잡하지 않은 오래된 동네 분위기를 오래전부터 봐와 이미 알고 있어 보지도 않고 계약했다. 그렇지만 기존 세입자 계약의 승계가 끝나면 들어가려 했던 그 집은 서울의 교통체증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고작 여의도에서의 왕복을 힘들게 할 것이 자명했다. 결국 그 집을 전세 주고 여의도에 다른 집을 샀는데 그 몇달사이 적응해 버린 나의 생활패턴은 스스로 가사노동을 책임질 수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려 입주를 날리고 집에 주저 앉아버렸고 그대로 방치한 사이 잊고 지내다 보니 비록 모두 문통 임기에 산건 아니지만 내가 지지하는 문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은 전형의 부동산투기범이 되어버렸다. 인터넷 약정도 언젠가 한국을 떠날수 있는데라며 한번도 약정을 안걸어 매달 4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는 이상한 뇌구조 탓에 언젠가 들어가 살겠지,라며 방치하다 시간이 무수히 지나버렸는데 마침 다른 프로젝트를 정리하다 생각난 김에 계약이 만료도 되고 해서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을 타이밍에 exit했다. 여의도 집은 몰라도 국박앞의 집은 살고 싶은 동네라 잠깐 멈칫했는데 생각해보니 남은 생에 아파트에 살고 싶어 질것 같진 않으니 적절한 exit같다.

 

3.

폴란드 출신의 메타버스 관련 기업을 exit했다. 오래된 투자였는데 처음 들어갈때만 해도 모두 고개를 갸웃댔었다. 그때는 지금은 누구나 아는 메타버스라는 용어도 붙지 않았었다. 요즘은 NFT, 메타버스만 스쳐도 투자금이 몰리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무슨 선견지명이 있었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그들이 일조할 것 같아서 투자했다. 10년전 세계일주를 할때 푸노에서 코파카바나로 장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해 피곤에 절어 있다 밥은 먹기 싫어 술이나 한잔하러 호숫가 허름한 술집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불현듯 누군가가 그리워져 내가 비록 그 바에 앉아 있어도 랜선으로 이어진 세상에서 내가 그리운 누군가가 아바타처럼 내 옆에 앉아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이 바안에 앉은 사람과 가상의 사람이 섞여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그걸 혼합현실이라 모호하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이만큼 흐르니 기술적으로 부쩍 가까워진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세상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왜 exit했냐면, 지금의 시장 과열이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더 매력적인 다른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생산의 3요소 중 문명사회로 접어든 후 절대적인 양이 별로 늘어나지 못한 단 한가지가 토지인데 메타버스는 그 공간을 생성해 내기에 그 가치를 가질 것이므로, 기하급수적으로 찍어내는 자본과 글로벌 아웃소싱과 자동화로 향상된 생산성, 그렇다면 다음에 올 것은 부증성을 가진 토지 위에 겹겹히 가상의 레이어를 씌우는 될것이다. 단지 공간생성이 키가 아니다, 그걸로 무엇을 해서 돈을 만들어 낼 것인가지.

 

4.

존경한단다.

의도가 뭘까, 생각치 않게 하는 담백한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뭐 이렇게 기쁠까.

지금의 자리를 exit할 때 멋진 선배로 남도록 진짜 잘해야지, 생각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당신께 감사한다.

내가 앞으로도 성장한다면 그에 당신의 몫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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