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lifelog 2021. 3. 16. 18:23

 

스쳐지나듯 본 예능 프로에서 어느 아나운서가 그런다.

신입사원 시절 국장님과 술자리에서 한입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국장님의 턱을 쳐서 술을 권한적이 있다고.

그때는 그 분을 "나이 진짜 많은 동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나의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다.

업무배치 첫날 책임 한분이 "잠깐 쉴건데 커피 한잔 할까요?"했는데 1초도 망설임없이 "저 커피 안마셔요"했던.

당시 진짜 커피를 안마셔서 그랬는데 그 분의 무안해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또, 상무님 자리 근처로 자리배치가 되었을 때,

상무님이 자리 비우신 사이 타 사업부 상무님에게 걸려 온 전화를 땡겨 받았는데 자리비우셨냐는 질문에

"네 방금 담배피러 나가셨어요"라고 답했었다.

다음부터 전화는 땡겨받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또, 같은 부서의 선임, 책임들을 나도 '나이 많은 동료+동아리 오빠'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주말에 다같이 말타러 가자고 하고, 경비행기 타러 가자고 하고, 제주도에 놀러 가자고 하고 그랬다.

그래서 회사 생활, 사회 생활의 괴로움으로 극한까지 내몰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뉴스로 접하면 '왜?'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신입사원이 얼마나 재밌는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연매출이 조단위인 회사가 그렇다고 가족같은 분위기도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틈에 인큐베이팅 될 수 있었던 내 복이다. 그런 덕에 구김없이 편견없이 잘 클 수 있었다.

물론, 틈틈히 구질구질했던 순간도, 불만에 가득했던 순간도, 누군가를 욕하던 순간도 분명 많았을텐데 지금 돌아보니 잘 미화되었다.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 동료들은 주로 관대하고 너그러웠다. 그래서 그 이후의 가혹한 환경의 무자비한 파크애비뉴의 동료들을 잘 컨트롤할수 있었다. 충분히 강해지기까지 너그러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지금 돌아보니 나의 성향에 비추어볼때 나의 커리어패스를 길게 늘여놓은 결과가 되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동료인가.

직설적이고 경쟁을 즐기게 된 지금 좀 가혹한 동료가 되었을까.

이 답은 아마도 내가 이 업계를 떠나거나 이직을 하고 한 3년후쯤에야 진짜 답변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얼마전 기존의 LP가 다른 LP를 소개했는데 나를 '천재적으로 유능한데 카리스마 없고 민주적 리더는 아닌데 책임감 있다'고 했단다.

아직 돈 잘 벌어다 드리고 있으니 점수가 후한것 같다.

그런데 뭘 모르시는 것 같다.

외모로는 전혀 카리스마를 뿜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평일 출근 때 내가 얼마나 스타일링에 힘을 주는데! 주말에 만나면 못알아 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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