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average

lifelog 2014. 8. 21. 21:51


1.

W가 보낸 메일이다.

제목은 '한국 기자들의 위엄'.




TV포비아인 나도 가끔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EBS의 다큐프라임에서 지난 1월 몇부작으로 만든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제목의 다큐 중 5부에서 앞부분을 발췌한 영상이란다. 


youtube 링크된 이 영상을 보고,

'아니, 저게 뭐야.. FTA, 특허소송, 북한, 군사문제 등 민감한 문제들 같은 건 질문 어렵다 치더라도 우주과학, 지구온난화 하물며 신변잡기(한국음식 좋았냐는 둥)라도 묻지.'라고 처음엔 생각했었다.


각국의 국민성을 드러내는 한편의 연극을 본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오바마(미국대표) - 미국에서 수업을 들을 초창기 때 가장 크게 난감했던 것은 학생들이 수업을 주도한다는 점이었다.

                           질문과 토론, 발표가 강의의 가장 큰 축이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 뜯던 기억이 있다. 

                           '여기가 하버드 로스쿨이냐, 아니면 court냐...', '나는 언제 말을 할 수 있는걸까'

                           참 다들 할말많군, 그때는 얘들 유전자가 그런줄 알았다.

                           근데 지금의 나를 보면 유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강의가 아니더라도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만난 서양애들은 대부분 논쟁적이긴 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화두에도 게스트하우스 쇼파에 앉아 토론판이 벌어지곤 했으니까.

                           예를 들면,

                           '튀니지인, 모로코인은 프랑스 국적을 갖길 원하는가?', '카스트로는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을 후회하지 않을까', 

                           '북한사람은 정말 여행을 못하는가?(우루과이에서는 심지어 만나봤다는 애도 있었다-_-)',

                           '오늘 사온 이 식료품은 GM 푸드일까? 이 나라의 정책은 어떻게 될까? ',

                           '지구온난화 관련 미국(엘고어가 선거에 이용하려 조작했단 얘기가 있음)이 거짓말을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도대체 배낭여행을 다니는 애들끼리 만나 이런 토론을 왜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누군가 화두를 던지면

                           어떤 쌩뚱맞은 화두라도 질문과 의견이 전쟁터 총알처럼 쏟아지는 디베이트가 시작되곤 했다.

                           오바마는 아마 그런 상황(본인에게 익숙한 질문폭탄)에 대해 개최국에 특혜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질문이 나오지 않자 한번더 배려해서 한국어로 질문하라고까지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 날 오바마는 '정말 없나요?'를 8번이나 재차 물었다고 한다. -_-

                           쏟아질 질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한국인'에게만 '특혜'를 주고자 했던걸테지만

                           결과적으로 전세계에 생방되는 방송에서 방한국에 난감한 상황을 안겼다.

                            돌아간 이후에 왜 우리 기자들이 질문을 못했던 건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유를 미국에서 만들어 발표한 것을 보면

                           그의 의도는 충분히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중국기자(중국대표) - 그 끝을 알수없는 대륙의 프라이드.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아가 세계를 리딩하는 나라로서의 중국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가사상에서 나오는 '중화'가 그 자신감의 원천일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편적인 예를 들면,

                              룸메이트(에스파뇰라)의 친구 중에 중국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컨설턴트 지망생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기회의 천국인 미국이라지만 사실은 더 차별적인 곳(특히 인종)이 미국일 수도 있다.

                              맥켄지나 BCG 같은 메이져의 미국본사 컨설턴트가 되려면 미동북부식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남자여야 한다는 

                              풍문이 있다.(물론 100%는 아닌 것 같다. 나의 지인 중에도 언어발달 분기점인 14세를 넘기고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간 한국인인 BCG 컨설턴트가 있으니까.)

                              컨설턴트 지망 대부분의 한국계가 주저한 리쿠르팅때(기회는 한정적이므로 모두 지원할 수는 없으니까)

                              이 여자애는 이 펌에 인턴 지원을 했고, 떨어지고 나서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너희는 이 결정을 후회할 것이다. 아시아 시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를 기억해라.'

                              더욱 드라마틱 했던건 이 펌에 정작 교수로부터 추천서를 미리 받은건 한국애였는데 이 중국애가 교수를 찾아가 

                              '컨설팅은 나를 파는 일이다. 기회에 주저하는 사람은 자격이 없지 않느냐' 항의해서 추천서를 돌렸다는 점이다.

                              나에겐 배울점 반, 지양하고 싶은 점 반인 사건이었다.

                               이 동영상에서도, 중국 기자는 아시아 대표를 자청하며 나섰고 오바마의 주저에도 결국은 기회를 잡았다.

한국기자들 - 이 동영상만으로는 기자들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이후의 다큐 영상을 찾아보고 나서 어느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인이고 이 한국적 사고가 이해가 간다.

                  동영상에 나오는 기자들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질문은 곧 답인것 같다고.

                  질문이 곧 그 사람의 지식 수준과 클래스를 말해주는 잣대로 가늠되기에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길 망설이는 것이라고.

                  이를테면, 내가 처음 떠올린 질문중에 '방한 중 한국음식은 먹어보셨나요?' 요딴 질문을 던졌으면 다음날 여러신문에

                  '뭐 그딴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기사가 실렸을지도 모를일이다.

                  거기에다 영어사대주의도 한몫했겠지.

                  '발음도 후지고 문법도 틀리더라며. 기자가 그게 뭐냐고' 이런 얘기 들을까봐 겁도 났을거다.

                   그런면에서 그리 선호하는 논객은 아니지만 정규재의 다음 이야기에도 일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한국식 수동적임은 좀 후졌던 것 같다.



2.

보스인 에디의 새로운 관심사 덕에 얼마전 초대 된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의 작품을 관람하고 난 뒤 

GV(관객과의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관객 중 한명이 영어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질문이 다소 산만해서 통역이 '한국말로 정리해서 다시 해라'라고 한 일이 있었다.

물론 관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고 유창한 통역이 붙었기 때문에 한국말로 질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그냥 그려려니 했었는데,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트위터를 보다 깜짝 놀랐다.

몇몇의 트위터리안이 GV에서 영어로 질문한 사람을 콕 찝어 '영어도 거지같이 하던데 한국인 다수인 곳에서 영어질문이냐, 그렇게 나대고 싶냐, 짜증나는 말 짤라 준 통역이 진짜 멋있었다.' 등 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욕(-_-)을 하고 있었다.

 오바마의 방한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그에 연결되 찾아진 정규재의 동영상을 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인이 유독 영어에 그런 것 같다. 흔히 영어사대주의라고 폄하되는 이 얘기는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영향이 좀 있다.

정작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애들과 대화할 때 보다 한국인 앞에서 영어로 얘기해야 할 때 나는 신경을 더 곤두 세운다.

어설퍼도 프렌치나 스패니쉬로 얘기할 땐 그렇지 않다.



3.

가끔 자료를 찾으러 가는 여의도의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의자가 몇십개가 주루룩 놓여 있었는데 그 중 한 의자가 다른 의자와 달랐다.

디자인이 다른 의자가 그곳에 있던 수많은 같은 의자보다 월등히 편안 의자였음에도 

입구에서 자리번호를 예약하고 와서 자신의 의자가 특별한 의자임을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은 옆 자리의 의자와 바꾸기를 했다.

결국 그 의자는 돌고돌고 돌아 원래의 자리에서 2블럭하고도 한줄 뒤에 남은 마지막 자리까지 넘어갔다.



4.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과 평균에서 벗어나면 불안해지는 마음이 공존한다.

하지만 다르다고 폄하하고 불편을 드러내는 찌질함은 접는게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5.

400km로 달리는 KTX에서도 이런 장문을 쓸 정도로 이렇게 인터넷이 잘 되는 대한민국이다.

자원도 별로 없는 우리가 세계 top을 달리는 경제를 갖게 된 건 사람뿐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나대는게 최고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오해는 말자.



6.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자는 십계명에 대해 쓰려다 마침 온 메일에 주제를 불편한 평균으로 틀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드러내는게 불편한 한국인이다.

5분 뒤 도착이란다.

이 딱맞는 전개라니,,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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