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 대한 호의

lifelog 2015. 7. 28. 23:56



1.

자주가는 집 앞 치킨집이 있는데 그 양파치킨을 먹겠다고 며칠째 집에 들어올때마다 들렀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얼마뒤면 뉴욕으로 돌아가는데 이거 못먹고 갈까봐(-_-) 마음이 조급해져서 결국 옆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어봤다.

'치킨집 휴가 언제까지에요?'

돌아 온 대답은 '할머니 폐암 말기 판정 받으셔서 지금 1달째 문 닫혀 있는데요'


이런..

이렇게 또 한 시대가 갔구나.



2.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

그리고 다음에 또, 지금이 마지막.


망설임이 무색하게도 Y는 여전히 심드렁 했고

나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들을 한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듣고 싶은 얘기가 없구나.


바닥을 찍고 끝을 보는것이 어떤것인지 안다.

이런 흐지부지한 끝이 나을때가 있다는 걸 이젠 알아야지.


익숙한 것이 낯선 것이 되야 할때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지난 15년이 갈 것이다.



3.

20년지기 S와 꼼장어를 먹으러 갔다.

며칠 전 배운 '아그와 그린라이트'를 만들어 먹자고 까만 비닐봉지에는 회심의 '아그와' 한병이 들어 있었다.

자주가는 허름한 식당에 자주 앉는 자리에 앉아 막 꼼장어가 익기 시작할 찰라 익숙한 얼굴이 문을 열고 쑥 들어왔다.

기가막힌 우연일까?

그동안 S를 지나쳐간 수없이 많은 여인 중 반은 녀석의 절친인 나를 싫어하고 반쯤은 나의 친구가 되었는데, 그녀는 후자였다.

눈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없는 내 눈에도 미련이 뚝뚝 떨어져 보이길래 회심의 아그와를 말아주고 이 술 이름이 '아그와 그린라이트'라며 이런저런 주접을 좀 떨어주고 술집을 나왔다.

집 앞이라 슬리퍼에 츄리닝으로 나왔는데 그냥 다시 들어가기가 참 뭐해서 자전거를 탔다.

밤이라 벌레가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나의 저녁을 희생했는데 그대 그만 심심하다 징징대시고 그린라이트 켜시길!

배고픈데 꼼장어 한개만 먹고 나올걸. @_@



4.

1박2일 일정으로 도쿄에 간다.

이건 뭐 거의 '나 수원 갔다 올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도쿄는..

익숙해지지도 호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5.

연초에 놓쳐버린 영화가 있는데 사람들이 잘 안보는 영화라 다시 구해보기가 여의치가 않았는데 무슨 다리밑에서 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거 보려고 한국에 왔나? 아싸'라고 외쳤다가 이내 '안되겠다'했다.

뉴욕이었으면 돋자리 들고 갔을 것이다.



6.

겨우 두달만에 돌아왔는데 뭔가 낯설다.

나의 익숙함의 근원이 한국말을 쓰는 이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는 너희들이었음을 알았다.



7.

G가 베를린에서 마징가제트를 만들고,

K는 오슬로에서 집을 짓고,

M은 볼티모어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S는 꼼장어집에서 그린라이트를 켜고,

B는 정자동에서 금사빠 놀이를 하고,

E는 수원에서 팜므파탈을 하느라 나를 내버려 두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M과 죙일 영화를 뒤졌다.

'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메리칸 섹스파티', '아메리칸 머슬'...

에잇! 됬어 안봐안봐



8.

이런식의 주절거림.

이건..

한 여름밤의 꿈이니까.

이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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