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lifelog 2015. 5. 19. 23:12

 

 

1. 

28회 비행,

207일 호텔에 체크인,

스타얼라이언스로만 24만 마일.

 

물리적 거리를 계산해주며 일목요연하게 인포그래픽으로 리포팅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목적은 탄소배출량을 줄이자 주장하는 영국의 한 스타트업의 앱을 돌려보려다 그만두었다.

 

얼마나 돌아다닌건지 물리적 거리를 계산하며 여권을 만지작 대다 뜬금없이 D사의 비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슷한 회사들의 그만그만한 포트폴리오를 한쪽으로 치우고

무시무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정글은 아마존이 아닌 사람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 있다는 에디의 말을 공감했다.

 

지난 2009년 튀니지를 여행 할 당시

60살이 되어서도 설탕물 속의 파리보다는 정글속의 고릴라와 키스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얘기에 공감 했었는데

다소 과장이었음을 고백한다. -_-

 

 

2. 

3건의 시리즈A 투자 진행 그리고 그 외의 규모가 작은 이런저런 펀딩들,

한국 C사와 A사의 몇가지 원료 수입 중개,

일본 Q사의 아비트레이션(incoterms는 전혀, 아주, 거의-_- 완전하지 않다는 초보적인 내용을 겨우 깨우치..),

베가스의 리츠(정작 네바다주를 움직이는 것은 베팅이나 관람이 아니었음),

영화 펀딩에 발가락 정도 담금,

뉴욕의 J사 어씨,

시나리오 작성(베리 비기닝),

어설픈 통역 그리고 번역 감수.

 

 

3. 

년중 반 이상 한국에 없지만 한국에 있을때도 한국인이 거의 없는 환경속에 살다보니 낯선 이국땅에서 섬처럼 살던 뉴욕시절이 계속 연장되는 느낌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파리시절, 뉴욕시절을 제외한다쳐도 천안 시절부터 여의도 시절까지 나는 거의 쭉 혼자였던 것 같다.

지난 1년, 잠깐 독립했다가 근래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찬스.. 입 밖으로 내 놓고보니 정말 행복한 단어구나.


이.. 섬처럼 동떨어져 사는 기분을 뭐라고 해야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런다. '죽어서 천국에 온 기분'

좋다는 거야? 외롭다는 거야?

 

 

4. 

지난해 어느날 빠리의 되마고에 앉아 있는데 어느 미국인이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짚어가며 장황하게 메뉴를 주문했다.

그대로 시켰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특별한 요구사항이 꽤 많았다.

예를들어, 커피에 우유말고 두유로 넣어주고 온도는 167℉가 좋겠다, 샌드위치에 혹시 땅콩버터가 들어가면 빼주고, 케익은 한입크기로 커팅해달라는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문제는 이걸 다 영어로 했다.

웨이터는 영어에 익숙치 않아 보였는데 그 미국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웨이터는, '나는 미국에는 절대 안 갈 겁니다. 영어를 못하니까요.'라고 불어로 얼굴 가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까지 했는데도

이 미국인.. 눈치도 없는지 대수롭지 않게 '다 기억했어요? 나 빨리 먹고 싶은데..'라고 영어로 주문을 마쳤다.

그 이후로도 서로 못 알아듣고 딴 얘기만 하는 벙찌는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이 장면을 쭉 지켜보고 있다가 이 불편한 장면을 정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막 참견하려고 나서는데 에디가 제지했다.

'미국인의 나르시즘과 프랑스인의 오만을 홉스테드 2차원의 low 성향인 영국인이 관람하는 중이니 한국인의 오지랖 인류애는 오늘 참아주시라.'


지난 1년, 비단 인종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상황을 맞닥뜨렸다.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생을.



5. 

나의 오랜 롤모델이자 라이벌인 엄마의 연봉을 드디어 넘었다고 뿌듯해하고 막 돌아봤더니

휴대폰 하나를 바꾸는 사소한 일도 나한테 물어보는 나이 든 엄마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모님과 때때로 배낭여행을 다니는데 올 여름 예정은 네팔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청난 지진이 발생해 갈 수 없게 된데다 나의 신변에도 변화가 많아서

여의치 않아 다음해로 미루기로 마음 먹고 비행기를 캔슬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목적지를 바꿔야겠다.


지난 1년, 지금 누릴 수 있는 어떤 것도 미루지 않기로 결심 했으니까.

 

 

6. 

통장에 찍히는 숫자와 주가지수, 그리고 부동산 시세와는 관련 없는 삶을 지향한다 여지저기 얘기하고 다녔는데,

지난 1년 부동산을 매입하고 PEF에 투자하며, 몸값을 불렸던 것은,

나이 탓으로 돌리고 싶다,고 쓰려다 일기를 고쳤다.

팩스에 종이만 걸려도 고장이 났다며 

문제를 알아 볼 시도는 커녕 다른 사람이 종이를 바꿔 끼워주길 기다리며,

그 팩스의 제조사도 아닌 그 회사의 모국인 미국 탓을 하던 빠리의 그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ㅡㅡ;

남탓하지 말자. 

그래. 돈이 좋아졌다. 쳇.


 

7. 

5월 17일,

꼭 1년이 되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심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깨달은 엄청난 사실은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걸로 마음먹었다.

이게 쉽다.

 

관성의 법칙이란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정지상태를 유지하는 것인데,

단서가 붙는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이 물리법칙을 정서적인 면에 억지로 대입하자면 시간을 곱하면 된다.

시간을 타고 그냥 흘러가면 된다. 그보다 강력한 factor가 있으랴.

 

 

8.

'귀사와의 파트너쉽을 희망하며, 아래의 조건을 검토 바랍니다.'

협상가나 전략가처럼 보이면 안된다.

토라진 아내를 달래는 남편의 심정으로다 접근해야 한달까.

마음을 열때 '타이밍'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상대가 나를 원하는 그 찰라의 순간을 놓치면 그를 돌릴 기회비용은 가늠도 안되지만 

사실상 이 경우 함께할 기회는 날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J에 합류하기 전 이 딜은 꼭 성사시키고 싶다.

내가 하는 어떤 일들이 마치 나에게 일어날 다른 일들의 복선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라 한발한발 잘 딛고 싶은 마음이다.

역시 계약은 어렵다. 

신변에 관한 일이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지난 1년의 마지막 날, 오늘, 최선을 다했다.

 


9.

내가 뭐라고 이토록 공들이고 오래도록 기다려 주시는지 고마울 따름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데이트는 즐거웠다. 두고두고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복잡한 마음으로 제주에 있었다.

올해 5월, 어제, 차귀도의 낙조는 여전히 보지 못했다.


역시 나는 동쪽이 더 좋다.

나는 늘 같은 사람인 것이다.



10.

지난해 전화기를 수영장에 빠뜨렸었다.

지인들과 통화하는 개인 휴대폰이었던데다 숫자에 관해서라면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자주거는 번호는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휴대폰을 바꿨다.

그런데 얼마 전 이게 내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랫만에 전화한 지인이 이런 문자메세지(카톡도 아닌)를 보냈다.

'설마 날 차단한거야? 아님 죽었어?' 


이유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관계를 정리한 것이 아니다. 정리당한 것이다. ㅡ_ㅡ



11. 

6월부터는 점심을 햄버거로 모니터 앞에서 때우며 12시간 이상 고군분투할 워커홀릭이 되겠지.

몇년 전 세계일주 시작 직전과 같은 마음이 든다.

사는게 두렵다 vs 사는게 설렌다.

또 다시 새로운 세상, 시작.


이런 선택의 기회가 자주 오는 이 멋진 삶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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