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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log 2019. 7. 29. 17:45

 

미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는 미국 내에서도 여러 인종이 섞여 살던 곳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곳에 정착해서 나만 이방인인가 싶지 않았고 

다행히도 중딩, 고딩 말고 대학원생이라는 다 커서 기본적인 존중은 받는 널널한 신분으로 시작해서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어드미션을 받고 일정 신분을 만들고 난 다음 그 집단에 진입했기 때문에 바닥을 치는 일을 당해보지 않은 것도 같다.

어느 정도 바닥이 올라온 위치에서 시작을 해서 그 위에 쌓았기 때문에 내 말이 속절없이 흩어지는 상황에 처한 적은 없다.

 당시 처음에는 그 사회로의 진입 자체가 뭔가를 이뤘다고 생각했는지 '인생을 나아지게 하고싶다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뭐든 해보라고, 원하는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지'라며 누구든 가르치고 싶어 했는데 그 안에서 진짜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부딪히고 이런저런 거절들을 당하면서 멘탈이 산산이 깨지기도 하고 실상은 전혀 뻔뻔하지 않은 성격인데 뻔뻔을 떨며 상황을 모르는 척 모면하기도 하면서 결국 버텨냈는데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거절을 클로징 하는 나만의 프로세스를 만들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누굴 가르치고 싶어 하는 오만도 버리게 되었고. 

 거절을 처리하는 방법은 모두가 그렇듯 딱 두가지다. 수용과 설득.

모든 거절을 설득해서 동의로 만들면 참 좋겠지만 현실에서 거절을 만나면 그게 참 쉽지 않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거절될 것 같은 상황이면 거절의 말이 딱 떨어지기 전에 설득 작업을 해야 한다.

일단 거절이 떨어지면 되돌리기는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되돌리는게 정말 능력인데 내가 이 부분에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한 번씩 꺾일 때면 데미지가 상당하단 말이지.

 그래서 수용 그리고 설득에 실패해 강제 수용해야 할 경우, 나름대로 거절의 클로징을 정했는데 이는 그저 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다. 거절로 딜이 깨질 경우 오는 경제적 로스는 다른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까. 

아무튼 수용의 프로세스를 정해두고 여기에 거절들을 태우면 내 마음은 한발짝 떨어져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잊고 다음으로 깔끔하게 넘어가면 되니까. 아깝거나 안타깝거나 억울하거나 또는 서운하다거나 아무 마음이 안 남으니 생각도 아예 안 난다. 가끔 예외가 있어 거절을 잘 클로징 못하면 횡설수설하며 상대에게 억지를 부리는데 되돌아보면 이 방법은 잘 먹히지도 않고 실패했다는 심리적 데미지는 오래 남더라는.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은 더 노련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1.

다른 나라법은 모르지만 우리가 대륙법보다 영미법을 따르는 경향이 있으니 내가 주로 상대하는 나라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헌법>법률>대통령령>부령의 단계 같은 건 차치하고 대개의 쟁점은 두루뭉술한 조례와 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행정소송까지 가면 진짜 계란을 바위에다 쳐야 한다. 처음에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땐 바위가 언젠간 풍화되겠지 하는 마음으로다 끈질기게 쳤었다.

특히 이 경우는 명문화된 거절을 받으면 끝난다. 그 전에 해결해야 된다. 키워드는 '적당히 똑똑해 보이면서(진짜 잘나 보이면 안 된다) 부드럽게'.

나름의 경험에 의하면 이 분야엔 '기조'라는 것이 있다. 명확한 논리와 법제해석보다는 공무원의 재량 또는 정권이나 정책의 분위기에 달렸다고 할까.

게다가 이 분야는 행정처리가 판례처럼 남게되는 걸 꺼리기 때문에 연관된 부서끼리 내용을 서로 핑퐁 쳐서 시간만 끌고 해결이 안 되게 만들기도 하고 미묘하게 다른 것도 일단 다른 거니 건건 소송하시죠,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회란 신뢰가 바탕이 되야하는데 법은 자의적이고 행정에서 공정은 찾기 어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거절은 시간이 늘어지는게 또 특징인데 판단이 섰다면 차라리 이럴 경우 재빨리 거절을 수용하는 게 났다. 차라리 얘 때문에 입게 될 피해에 엑싵을 잘 만들어주는 게 최선이다. 보통들 작은 여지를 주면서 질질 끌고 들어가는데 결과가 거의 좋지 않다. 끈질긴 게 별 매력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억울함은 프로세스에 태워 날리고 비용만 잘 피봇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이때 날린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은 받아낼 곳이 없다. 이게 회사라야 나중에 뒤통수라도 치든 값을 받아내든 하지.

 돌다리를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준비도 다 소용이 없다. 그냥 부처의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장착하고 거절은 프로세스에 태워버리고 재빨리 변신하는 게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아직까지는 여기고 있다.

 오늘 로펌과의 저녁식사에서 또 배우는게 있겠지.

 

2.

기본적으로는 거절을 피하는 성향이라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누구도 잘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개인적 안위를 걱정하는 몇 안되는 지인이 흡연을 한단다.

놀라운 건 오랜 시간 동행을 해도 그런 광경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내가 기억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아무튼 그제 담배를 피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되었는데 기분이 상했다기보다 나는 이게 깜짝 놀랄 일이었던 게 개인적인 일로 더운데 몇 시간을 끌고 다녀 뭔가 그런 욕구가 폭발한 것 같아 그의 수명을 한 5분쯤은 단축시킨 공범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금연이 어떻겠냐며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는데 대답이 걸작이다.

과거 몇년을 끊었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얘기한다고 해서 갑자기 끊을 이유가 없다고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다고.

끊을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얘기. 끊을 생각은 없지만 그냥 노력해 볼께,라고 했으면 속아줬을 걸. 그냥 쌩으로 거절을;;

수용 프로세스가 정상 동작했으면 '맞아, 기호지!'라며 얼른 태웠어야 했는데 '내가 뭐 사줄까? 금연침? 금연까지 간식 무제한? 한약?'이라며 끝까지 주접을.

 하루가 지나니 더 선명해진다. 선을 지났구나. 누군가의 개인적인 인생에 개입하려면 좀 더 상위 레벨의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을. 그냥 필래,라고 했을 때 알았다고 했으면 니 말을 왜 듣냐는 소리는 안 들었을 것을. 하하하

역시 클로징이 중요하다. 오늘까지 생각난다.

 

3.

이번 금요일, 일단 한번 결정한 일은 잘 안바꾸지만 이미 두 번 거절을 한 일에 설득될 마음을 지금 방금 글을 쓰면서 먹게 되었다.

사실 나를 잘 모른다는게 유일한 문제인데 일관되고 정성인 태도의 설득에 이번엔 넘어가 주자.

누구 말 맞다나 시작을 해야 다음 장면도 볼 것이 아닌가.

결정했으니 이다음부터 일어날 일들을 책임지기만 하면 된다.

이런 걸 보면 너무 일찍 수용의 프로세스에 태우면 안 되는 건가? 설득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으니.

 

4.

가끔 친구들과 야구 보러 브롱스 인근에 갈 때면 기회의 나라라지만 기회가 없는 그 거리의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며 거대한 벽 같은 게 보였던 것도 같다. 흑인으로 태어나면 운동선수나 래퍼가 되지 못하면 커다란 성공의 기회는 거의 없어 보이는 사회. 요즘 우리나라 10대 사이에 힙합이 그리 인기라면서 희망직업 1위는 공무원이라는 얘기를 듣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성공은 요원한 일이니 세게 거절당하기 전에 미리 포기하고 수용하는 것,,아 또 아니라 하고 싶지만 사실 인생은 그냥 대충 사는 게 잘 사는 거다. 성공이 별거냐. 그냥 아무나 돼도 된다.

 

5.

상해 비즈니스의 설득의 셀레브레이션으로 파트너들과 파라다이스의 크로마에 갔다. 

좋은 DJ까지 좋은 클로징이었다.

소싯적 좀 놀아본게 도움이 된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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