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or not to be.

lifelog 2014. 6. 5. 12:06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그제까지 이어진 영미문학자들의 저녁 토론은,

The Grimm에서 시작해서 Hamlet에서 끝이 났다.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것은 카페인을 만땅 들이 마셨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아드레날린을 몸속에 뿜어냈다.

거의 밤 11시 매번 토론이 끝났때마다 심장이 뛰고 손이 덜덜 떨렸었다.

발표자도 토론 참석자도 아닌 비 전공자가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의견과 요즘의 관심사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자세한 내용을 미리 알기 위해서였긴 하지만

사실 위대한 극작가 세익스피어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행동과 사색 사이의 갈등,
소극적 인내와 적극적 항거는 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의 대상이다.

 

마침 선거가 끝이 났다.

마지막 작품인 Hamlet의 유명한 대목이 머리속을 계속 돌아다닌다.

 

 

[3막1장 56~88행의 독백]

  원작[ http://www.online-literature.com/shakespeare/hamlet/ ]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저항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다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be)너무나 충격적인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들로 부터 고통받는것이 정신적으로 더 고상한가,
(not to be)수많은 문제에 대항해 무기를 꺼내들고 그것들을 끝장내는 것이 더 고상한가?

 

To die, to sleep— No more;
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ed.
죽는 것은 자는 것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만약 잠으로써 육신이 물려받은 비탄과 수천가지의 타고난 고통을 끝낼수만 있다면?
그건 열렬히 소망하는 완성이다.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 Aye, there's the rub,
죽는것은 자는것이다.
잔다면 어쩌면 악몽도 꾸겠지. 그건 장애물일거다.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 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그 죽음의 잠속에서 어떤.. 악몽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가 육체라는 굴레를 벗었을 때(죽었을 때)
(악몽이 나온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건 긴 인생을 걱정거리로 만드는 재앙이다.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e 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espise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e unworthy takes,
시간의 채찍질과 멸시,
억압자의 학대, 거만한자의 무례,
거절당한 사랑의 고통, 재판의 지연,
관리의 오만함, 인내하는 자가 무가치한 자들로부터 받는 무시,
..같은... 현실의 고통들을 누가 견디겠는가?

(만약 죽음 이후가 완전한 해방이라면... 그냥 죽으면 된다)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그 스스로 단 한자루의 단도로서 자신의 인생을 청산 할 수 있다면?

 

Who would these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e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지친 삶에 눌려 불평하고 땀 흘리는 그 무거운 짐을 누가 견디겠는가?
만약 죽음 이후의 그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
그 가장자리에서 누구도 돌아온적이 없는 그 미지의 세계가 우리의 의지를 혼란시키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것들로 도망치느니 차라리 우리가 가진 현실의 불행들을 견디는 것이 낫다고 한다면?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
심사숙고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래서 결단의 원래 색조가 사색이라는 파리한 색조로 퇴색되어 진다.
극히 중요한 모든 일들이 이런 근심으로 인해 흐름을 잃어 버리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생각이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행동이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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