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과 빌 클린턴

lifelog 2014. 6. 15. 02:59

1.

 며칠 전 을지로입구 역에서 2호선을 타고 왕십리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 도곡역에 가는 길에
뒤에 오던 남학생의 인상깊은 목소리.
 "할머니, 대전에 우박이 내린다고 해서요. 혹시 어디 다치신데는 없나해서 걸었어요."
 "서울은 우박 안와요. 전 괜찮아요."
고백컨데, 나는 진심,, 마음이 움직였다.
'요즘 애인데 저런애가 있어?'
결국 고개를 꺽고 돌아봤는데 역의 올라가는 계단이었던지라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던 녀석과 부딪히고 말았다.
'한국이야!! 여기서 말걸면 안돼!!!'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이미 눈으로는 뚫어져라 그 녀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뭐지? 왜 이렇게 마음이 좋지? 나도 집에 전화 좀 드려야 겠다.'

 

2.
 오늘 오전, J사의 VC와 P사의 V.P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다.
J사의 A는 이를 놓치지 않고 오늘도 어김없이
E 나라의 지난 총리 사촌이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데
프리미어 리그의 무슨무슨 직책에 있고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지네 나라가 4강에 들면 경기를 관람하러 '가주기로' 했다고 부터 시작해
짧은 식사 시간을
나는 도대체 누군지도 알 길이 없는 온갖 화려한 인맥과 자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물들였다.

 

3.
 메모광인 나에겐 노트가 여러권이 있는데 다들 그 자신만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노트중에 [슬라보예 지젝과 빌 클린턴]이라는 이름의 노트엔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인평을 적어두곤 하는데,
미팅이 끝난 오후 까페에서 열 올리며 이 노트를 적던 날 보고 에디가 말했다.
'CIA 외교 비망록이야?'

"이건 비즈니스의 이익이나 빠릿빠릿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야. 좀 다르다고."
그래서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 나온 클린턴과 그의 일화를 들려주며
나의 흥미로운 취미생활을 설득 받아보려 했는데 녀석이 쉽게 설득 당하지 않기에,
결국 요즘 아주 더디게 읽고 있는 논어를 인용해주었다.

 

論語의 述而편(논어 술이편)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
 공자 말씀하시길: 세사람이 길을 가게 되면 반드시 내 스승이 그 중에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려 따르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자신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감동 받은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척 의기양양해 졌었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돌이켜 보니, 며칠전 어떤 모임에서 내가 J사의 A 같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한국인들과 있을 때 더 많이, 더 자주, 부끄러운 상황이 오는 것일까,

더 많은 만남으로 연습을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맞는걸까, 아니면 쓸데없는 만남은 피하는게 맞는 걸까,

이 정도 어려운 문제는 정말 '공자'님께 물어야 하는 것인가.
저녁 8시지만 아직 너무 대낮 같은데, 나는 또 새벽 감성 같은 반성을 한다.

 

그나저나 fondant au chocolat,, 아 진짜 뭐 넣는거야. 왜 이렇게 맛있냐.
나의 빠리는 정말 늘 눈부시구나.

 

   제가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를 아주 즐겁게 만들었던 멋진 스캔들이 벌어졌습니다. 

   제 통역관이었던 한 나이 많은 여성은 아주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데올로기적 외설에 대한 사례들을 마구

   열거했을 때 그녀는 너무 당황해서 통역을 중단했고, 거의 기절할 뻔했죠. (웃음) 어쨌든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통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클린턴과 저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저에게 아주 훌륭한 답변을 던져주었어요. 그녀의 답변에 모두가 박장대소했습니다.

    “당신은 섹스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만, 그는 실제로 했죠”라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슬라보예 지젝,『불가능한 것의 가능성』142쪽                                                                                                                        ┘


그저 우스운 여담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지 않은가? 그러니까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괜찮은 자유주의자'들은 모두에게 나름 좋은 사람으로 대접받지만 결국은 자기만의 쾌락에 몰두하는 반면, 지젝으로 대표되는 '위험한 좌파'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더 많은 즐거움이 사회에 퍼지길 고민한다는 사실 말이다.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삶과 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정쩡하게 머무르는 사유를 더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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