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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튀니지] Come Back to Earth> 4차원 도시,,, Le-Kef. - #1
travelog/Tunisia
2011. 2. 4. 23:50
생각보다 두가(Dougga)에서 오래 지체한 터라 르케프(Le-Kef)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타고 온 버스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버스터미널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르케프(Le-Kef)의 첫 인상은 쓸쓸함이었다.
우리가 내린 버스정류장은 높은 언덕 지대에 자리하고 있었고,
사람이라고는 버스에서 같이 내린 벼슬이 움직이는 닭을 들고 다니는 할머니뿐이었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동네에 돌아 다니는 닭들이 정말 이렇게 있더라.
다행히 버스정류장 아저씨가 퇴근을 하지 않아 르케프(Le-Kef)에서 각 도시로 출발하는 버스들의 시간표를 물어보고,
(이때까지도 르케프(Le-Kef) 다음엔 어디로 가지? 이러고 있었다. -_-)
버스 이동 중 점 찍어 둔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을 빠져 나왔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까만 먹구름이 그 아래 회색 도시를 잡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이건 좀...
...
이런..
.....
비 그치길 기다리다 포기.
결국 그냥 비를 맞으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해는 졌고, 비도 오고, 배도 고픈데 이 와중에 오늘 잘데가 없다,,는 점이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상황을 만들었다.
짐들고 비 맞으며 잘 곳을 찾아 다녀야 한다니,,,
배낭을 잡아 당기는 중력이 몸을 뒤로 넘어가게 할 것만 같았다. -_-
찍어둔 숙소(숙소 선택에 기준같은 건 없다. 주로 이름에 필~ 이 오는데로 들어가는 편이다) 중 첫번째는 실패,
그 다음 호텔(우체국 맞은편 50m쯤에 있는 촌스런 타일이 알록달록한 호텔 Ramzi-Rue Hedi Chaker, 78 203 079-)로 들어섰다.
카운터에서 우리를 엄청 신기해 하는 언니 둘이 연신 방싯방싯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느낌이 온다.
그나저나 이 언니들, 불어로 해도 될 것을 계속 이상한 영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일명 프렝글리쉬,라고나 할까.. 뭔 말인지.. ㅠㅠ
언니들 손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가 방을 고르는데,
아.. 완전.. 유치..
딱 내 스타일! ㅋㅋ
바로 계약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재빨리 키를 잡아채 문을 닫으며
기약없는 공수표 약속을 날리며 웃었다.
"오늘은 이만.. 내일 놀아 줄게요~~ ^^;;;(대화를 계속하고 싶어하는지라..)"
비를 맞아 춥고 죙일 돌아 다녀서 체력도 바닥이라 샤워하고 나오니 몸이 자동으로 침대 속으로 꺼졌다.
한잠자고 일어나 아까아까부터 주린 배를 채우러 동네 탐방에 나섰다.
사실, 이미 밤이 너무 깊어 불빛도 별로 없는 이 동네.. 30~50m 전, 후방 정도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숙소에서 30m쯤 떨어진 대문이 활짝 오픈되어 있는 동네 식당을 찾았다.
이 도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기억한다.
메뉴 고르기 놀이.
1. 식당에 들어선다.
2. 두개*대충 6~7명=12~14개의 눈이 일제히 우리를 따라 다닌다.
혹, 줄서서 뭘 사 먹는 곳이면 그 줄이 모세가 홍해 가르듯 둘로 갈라진다.
3. 메뉴판에 읽을 수 있는 글씨가 제한적이다. 결국, 메뉴판을 바라보며 매직아이를 한다.
4. 한참 뒤 주방장(로컬) 또는 지배인이나 서버(레스토랑)가 다가온다.
5. 설명한다.
6. 로컬식당은 로컬식당대로 익숙치 않은 메뉴(사실 대부분 메뉴가 없거나 아라빅이다.)라 고르기 어렵고,
레스토랑은 레스토랑대로 고를게 너무 많아(불어메뉴판이 대부분 있지만 전채요리-소스부터 시작해서 고기라면 익힘 정도,
고기 종류 등등-부터 디저트까지.. 복잡하다) 어렵다.
(사실 프랑스식 정찬을 내는 식당은 한국에서도 잘 못 고른다.. 순서도 많고 고를 것도 많고..)
7. 로컬식당의 경우 식당 손님들이 앉아 있는 식탁투어를 한다.
이게 르케프(Le-Kef)-튀니지 여행 초반-에선 참 뻘쭘하고 당황되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이렇게 먹고 있는 음식을 직접 보여주는 건 고마운데 불쾌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뭐 익숙해진 다음엔 식당 들어서면서 동네 사람들 먹고 있는 음식 물어보고 "저걸로~"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지만.
레스토랑의 경우는 아주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고 그래도 잘 못 고르면 재료를 직접 들고 나와준다.
"요걸로 만들거야" 이렇게.. 그래도 매니져가 도미를 쟁반에 들고 나왔을 땐 나도 좀 놀랐다.
8. 모두 모여 토론을 한다. 주로, 반쯤만 알아듣는다. ㅋㅋ
9. 음식이 나오면 일단 맛이 있든 없든 "본 아뻬띠"를 연발한다.
어쩔 수 없다.
기대하는 눈이 최소 14개다.
이 주문 과정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40분까지 걸린다.
밥 먹는데 공들이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_-
그나저나 내 여행엔 먹는 사진도 거의 없고, 노는 사진도 거의 없나 보다.
재밌는 순간엔 사진기를 내려 놓는다는...ㅋㅋ
나는 작가는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