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잠행

lifelog 2014. 7. 28. 13:56


상해를 들러 양곤에 갔다가 부천영화제 폐막식에 갔다.


가는 곳마다 한국처럼 비오고, 한국처럼 덥고, 시간도 한국 같고, 사람도 한국 같아서, 그냥 집에 있는 것 같았다.
토요일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SH : 한국 아니었어? 비와서 좋다매?
E : 가는데마다 비오거나 비올것 같거나 그랬어. ㅋㅋ 웃기다, 나 꼭 잠행다닌거 같잖아? 재밌다. ㅋㅋㅋ 근데 당신이 어디냐 안물었어.
SH : 다음부턴 꼭 이거부터 물을께 '어디야?'






1.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대부분이 한류의 영향일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버리는 서베이 결과가 나왔다.
  대충 요약하니 다음과 같다.
   - 그냥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왔다.
   - 한류는 잘 모르겠고, 우리나라에서 한국은 쇼핑 천국으로 유명하다.
   -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일본은 다녀왔다. 좀 특별한 곳으로 휴가를 가려고 찾다가 한국에 왔다.
   - 물가가 싸고 인프라(사회 기반시설-대중교통 같은)가 좋다.
  결론은 K-POP 공연을 보러오거나, SM/JYP/YG등을 방문하러 오거나, 드라마 촬영지를 보러 온 직접적 관광객은 1%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관계자들의 반응은 두가지였다.
  (관광대국을 외치며 이 정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들 마음속 신화를 깬 진짜 진실이 뭐였는진 나도 모르겠다.)
   - 정책이 헛다리를 집고 있는 것 같다. 방향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관광의 효과가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한류가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위상을 상향시킨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것이 여행지로서 한국을 선택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다.


  관광관련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관심이 많은 나로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문득 든 생각,
  내가 짠 판이 뭔가 결과를 내고 있을 때 가시적으로 확 뜨거나, 망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있다면 
  다음 액션은 반성 후 수정이 맞을까, 의미있는 결과를 낼 때까지 원안을 밀어 부치는게 맞을까.


  한국의 대표팀 축구감독을 독이 든 성배라 한단다. 결과를 낼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충분한 시간을 주고 감독의 생각대로 선수들이 충분히 조련되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히딩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고, 홍명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항변할 수도 있을거고,
  누군가는 애초에 히딩크니까 4강을 이룬거고, 홍명보니까 예선탈락 한거다 얘기할 수도 있겠다.


  김일성이 사회주의 체제로 북한의 판을 짜 통치하다가 1980년쯤에 가서 경제적 몰락을 겪는 자국을 바라보며
  '아 이게 뭔가 잘못됬구나, 처음부터 다시 할까 아니면 뭔가 바꿀까' 고민했을까, 아니면
  '전 세계에서 손에 꼽게 자본주의와 미국의 통치를 받지 않는 이상향을 만들었구나. 나의 유산이 내 직계 대대로 상속되겠구나. 계속 가보자.'라며 축배를 들었을까.
  아니, 감정이입 안되는 김일성은 때려치우고라도 혁명의 아이콘 체게바라라면? 아니면 수십년 쿠바를 통치한 카스트로라면?
 (이 땅에 오니 자연스레 사회주의가 떠오르긴 했는데 스타벅스에 앉아 홍콩스러운 와이탄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좀 어색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lean thinking을 지지하지만,
무엇인가를 시작하고(프로젝트든 혁명이든) 난 후,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것을 유연하게 바꿀 수는 있겠지만,
시작할 때 근본에 깔렸던 근원적인 철학만은 변질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황푸강을 바라보며 스타벅스에 앉아 세스와 배리의 저서를 읽고 있는데, 마침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중요한 문제에는 타협하지 마라. 그 외의 모든 것은 타협해도 좋다.' 
중요한 얘기다.


그에 더해, 또 한가지 중요한 상해 소감은 이제 더는 미루면 안된다는 깨달음.
Barry Naughton의 The Chinese Economy,
적절한 교양이 필요하다.




2.
의외였다.
한국의 뷰티산업이 미얀마에 열심히 진출중이었다.
오래 전 내가 방문했던 '버마' 시절과는 여러면에서 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살림은 궁핍해보였다.
하지만 2~3달러를 들고 밖에 나가면 밥을 사먹을 수도 있고 과일을 한다발을 살 수도 있다.
내가 늘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은 만원을 들고나가도 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환경 때문이었을까?,라고 생각해보다가 웃었다.




3.
일생처음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잘생긴 디렉터와의 저녁도 좋았다.
그런데, 나는 폐막식 interpreter 밖에 생각이 안난다.
세계 48개국에서 영화를 출품했다고 했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참석했겠지만 공용어처럼 생각되어져 그랬는지 영어-한국어 위주로 진행되었다.


 - 영어 통번역하는 분이 뛰어났다.(심지어 간단한 불어 통역-수상소감 중 배우가 영어하다 불어해버림-도 하더라ㅡㅡ능력자)
   하지만, 소감이든 진행이든 말을 하는 사람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4 한장 분량을 다 읽고 interpreter를 바라보면 그는 아마도 입시보는 심정이지 않을까.
   나는 내가 하는 얘기도 5분전에 말한 걸 똑같이 얘기해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은데.
   심사평을 하는 여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척이나 불편해보였다.(관객입장에서도) 
   음악에서만 박자가 중요한게 아니다.
 - 무슨 상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일본인 감독이 수상을 했는데 수상소감을 안시켰다.
   나는 진행미스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일어 interpreter가 없는거였다.(세계3대 쟝르 영화제라매..-_-)
 - 이탤리언 수상자(감독의 대리수상자)가 나와 수상 소감을 하는데 어떤 젠틀맨(interpreter는 아니라 믿고 싶다)이 나와 말한다.
   '제가 스패니쉬 통역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필대로 얘기하자면 대리수상이고 감사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통번역이 무대위에서 마치 허접 스패니쉬를 구사하는 내 필처럼 얘기했다~
   몇해전 키안티의 포도밭에서 60대 후반 농부이신 마우로 부모님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이탤리언을 전혀 못하는 나와 이탤리언 밖에 못하는 그분들과의 절름발이 대화.
   (이탤리언과 스패니쉬는 서로 대충 때려맞출 수 있는 언어라는 걸 그때 체험했다.)


사실 영화제에서 중요한건 이런 번역 따위가 아니다.
본질을 모르는 무지한 내 눈에 교훈이 이 수준으로 남았을 뿐이다.
'영화제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은 이번 부산영화제를 한번 가보자,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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