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lifelog 2015. 9. 3. 00:43
 
 
1.
PC라는 것이 있다.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인데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좀 웃기고 언어 순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미국이 다민족 사회에 이런저런 평등을 목 놓아 외쳐대는 나라인 까닭에 처음엔 정치적 의도로 생겨난듯 한데
좋은 의도(?)로 시작 되었다쳐도 요즘 보면 좀 오버해 더 나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PC를 위한 PC랄까.
특히 나같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가끔 뭔 말인지 못 알아듣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물론 흑인을 뜻하는 단어를 Negro에서 Black 그리고 지금은 African American으로 바꾼건 좀 타당해 보이기도 했다.
Negro는 '흑인' 이전에 '흑인 노예'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친구가 된 P를 3년 전 학교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난 휴스턴에서 태어나 자랐고 우리 부모님도 둘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변호사셔.
그리고 난 지금 뉴욕에서 공부한지 5년이 되었어. 아프리카엔 한번도 안 가봤어.
하지만 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나를 African American으로 부르지. 재밌지 않니?'
 
Elderly를 Senior citizen으로 부르거나 Chairman, Spokesman등의 man을 person으로 바꾼다든지,
Homeless를 Residentially flexible로 부르는 것 등등은 뭐,, 대충 때려 맞출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들은 PC는 'what?'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fat(뚱뚱한 사람)을 horizontally challenged라 하더라.
 
이런 유머쟁이들 같으니.
 
 
2.
The Modern에서 S와 저녁을 먹었다.
 
S: 여자들이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건 '당신 지금 너무 들이대고 있어요'라는 의미야
E: 진짜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지 -_-
S: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첫째, 남자친구가 진짜 없는 경우, 이건 그냥 들이대는 사람이 별로라는 소리야.
   둘째,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 지금 관계가 딱 좋으니 넘어오지 말란 소리야.
   마지막, 남자친구가 있지만 상대에게 이해를 구하고 여지를 주는 거지. '그래도 어때?' 이렇게.
E: 이렇게 얘기하나 저렇게 얘기하나 거절만 확실히 하면 되었지 뭐, 안그래?
S: 아니지, 세가지 중 어떤 경우라도 마지막 경우로 만들 수 있거든.
   아니, 그럴 수 있다고 대부분의 매력적인 남자들은 생각해.
E: why? ㅡ_ㅡ; 지나치구나..
S: why not?
E: 보스와 프렌치에서 저녁 따위 먹는게 아니었니? 니 얘긴 너무나 미국식이야.
 아.. 이런게 컬쳐쇼크라는 거야,라 얘기하고 돌아보니,
 얼마전 주량이 얼마냐는 질문에 같은 언어를 쓰는 어느 게릴라가 '예쁜 여자랑 마시면 안 취한다' 했던게 떠올랐다. oh my days~
 
그나저나 모던의 래빗테린은.. h도 좋아하는데...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다보니 좋은 식당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몇주 전 끝난 레스토랑 위크에 내가 좋아하는 식당은 많이 제외 되어 있었다.
내가 좋은 건 남들도 좋아한다는 뜻이고,
좋은 건 100원 더 비싸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반증일까,, 너무 나갔다.. ㅋㅋ


이렇게나 좋은 식당을 많이 아는데 같이 가고픈 사람이랑 못 가본다.
 
 
3.
요리라고는 달걀프라이, 라면 끊이기 정도밖에 못하던 시절을 지나,
3년전 유학생활을 하며 잠깐 익힌 전기밥솥에 밥하기 코스를 거쳐,
지난 2달 남짓 뜬금없이 요리에 빠져들며 나름 요리왕이 되었다 으스대고 있었다.
지난 유학시절 내 요리의 꽃은 전기밥솥에 밥을 가득한 다음에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얼리는 것이었는데
불과 지난 2달 양념치킨, 일식 돈까스, 탕수육, 알리오올리오를 위시한 각종 파스타, 잔치국수 등을 해오며 
주변(전부 토종 미국인)의 쏟아지는 극찬에 진로를 바꿔야 되나, 잠깐 생각도 했었는데..-_- 결국 지난 주말 빵 터져버렸다.
자신감에 쩐 나머지 한국식 궁중요리를 해주겠다며 무려 '구절판'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나를 둘러싼 대부분이 바쁜 직업들을 가져 요리를 해볼 엄두를 못내기도 하지만 
그보단 일단 동양의 손재주가 탁월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하고 싶은게 있으면 밤을 새도 하는 근성까지. 
그래도 '구절판'은 오버였음.
 


4.
근래 피로하다며 인스타를 접어 버린 J와 Nobu에서 점심을 먹었다.


J: 친구란 옆에 있는 사람, 자주 보는 사람, 그래서 익숙하고 만나기 쉬운 사람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한때 살던 지역, 한때 다니던 직장, 한때 다니던 학교를 떠나고 나면 무슨 무슨 모임으로 엮이지 않으면 그 관계가 소멸되는 경우가 많잖아?
E: 뭘 그렇게까지..
  그냥 상대에 대한 관심의 문제지,, 가깝다 여겼는데 나한테 별 관심없는 상대를 마주할때면 좀 당황되어 관계가 접히기도 하지만 뭐;;
  국적도 다른 우리는 딱 한학기 수업을 같이 들은 사이지만 연락이 끊긴 몇년 뒤 이렇게 다시 만나 점심을 하고 있잖아?
J: 단 한번을 만나도 내 인생에 영감을 주고 어떤 변화를 주는 쪽을 오히려 더 친구라 말하고 싶은 걸?
  혹 상대가 나에게 적대적이라도 말이지.
E: 그런거라면 내가 아주 좋은 친구를 알고 있지. 
  책을 읽고 예술작품을 만나봐. 난 가끔 작가들이랑 대화해 -_-
J: 어떤 주제를 대화에 던져도 다양하게 반응하는구나. 좋아.
E: 얼마전에 허핑턴포스트에서 '일생 지속되는 관계는 없다. 친구를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어.
  공감도 조금했는데.. 뭐 그리 극단적일 필요있나,, 멀어졌다 이어졌다 하는게지.
 
쿨하게 얘기하고 점심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 오지랖,,, 내가 무슨 조언을;;;


'life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가을 제주  (0) 2015.09.17
커피는 바람에서  (0) 2015.09.08
이중생활  (0) 2015.08.26
포지셔닝  (0) 2015.08.12
take  (0) 2015.08.02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