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in

lifelog 2014. 6. 3. 14:23






주저없이 꼽는 최고의 영화 <미드나잇 인 빠리>

비가 오는 날,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우산을 들고 걷다보면 늘 어김없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빠져들곤 한다.
영화를 보면, 

물가도 비싸고 사람들이 도도하더라도 왠지 빠리에 가면 

뜨거운 사랑, 낙천적 인생관, 치열한 자유, 풍미좋은 수많은 예술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수도없이 갔었고 잠깐 살기도 했던 빠리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내게 있을리 없다.

사실 빠리지앵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금새 끝이 나고, 

풍미좋은 수많은 예술은 박물관에 갇혀 있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빛이 바래고 있고, 

낙천적 인생관은 한국적 미래관과 상충하고,

치열한 자유는 껍질이 내용물보다 더 크다.

게다가 빠리지앵은 뉴요커 못지 않게 도도하다.

(뉴욕에 살때 친구들-뉴요커-과 이런 얘길 한적이 있다. "뉴욕? hate it or love it!" 그런데, 빠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빠리를 사랑한다.

이유는 노코멘트.

나도 나만의 이유를 찾았듯 다른이도 그만의 이유를 찾길 바라고 있다.(그래야 천천히 들여다 볼테니)


뉴욕, 빠리,, 
많은 관광객, 쇼핑, 번잡한 도시, 차가운 사람들을 싫어하는 내가 아이러니 하게 이 두 도시에서 살았었다.


빠리를 생각하면 보라색 공기에 휩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미워하게 되는 도시,
감정이입 되는 이 도시들에 나는 연민이 있다.
차가워 보이는 외모안에 이런저런 멋진 것들도 있으니 오해하지 말고 천천히 알아가 보라고.
나는 전혀 도도하지 않다고.
^^;;;


비오는 날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끼리 감정을 공유한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메신져에는 오늘 유난히 비 얘기가 많고 아침부터 쌓이는 메세지에는 비 노래가 가득 실려온다.
여러 도움으로 오늘의 playlist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으로 시작해서 윤하의 '빗소리'로 끝이 난다. 


빠리의 100년 된 책방 앞의 80년 된 어느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두고,

프렌치 노신사와 까뮈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 지금 내가 있는 이 최신 프랜차이즈 까페엔 Trio의 Da Da Da가 흘러 나오고 있고, 
우유 잔뜩 라떼를 앞에 두고 있으며,
내 가방에는 Pierre Bourdieu의 [La Distinction]이 들어 있다.

겉과 속, 이상과 현실은 원래 다르다.
그리고 빠리도 햇빛 아래에서 보다 오히려 비오는 날 더 아름답다.

진심으로 본질을 알게 되길 원한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뱅상과의 미팅 시작 40분전이다.                                     
낭만과 숫자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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