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키는 청자가 쥐고 있다.
귀하게 태어나 천하게 사는 걸까
천하게 태어나 귀해지는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천하게 사는 것을 비판해야 할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귀하게 올라서야 하는 걸까.
아니, 귀한게 뭘까?
내가 정의한 그 개념이 귀하다는 것이 맞을까?
동서양 막론 '신데렐라'라는 단어가 있다는게 불편했다. 아니, 슬펐다.
그들앞에서 꿈이니, 인생은 그런게 아니라느니
내 꿈은 누구에게 기대서 이루는게 아니라느니 따위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긍정과 그 어떤 펄스널리티에 대해 떠들든 포르쉐를 탄 남자의 차 옆자리만 못했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대화라면
모두 의미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화자가 달변이고 충분한 근거만 갖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 키는 청자가 쥐고 있다.
들으려고 하는 누군가가 설득을 당하는 것이지,
길거리에 있는 A,B,C 누구나 설득할 수 없음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 여행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안에서 만난 사람들, 학교와 연관되어 만나는 사람들,
여행 중 호스텔, 비치, 바, 그리고 클럽 등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최근 난 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종을 넘나드는 중이다.
때론 집 거실에 앉아 밤을 달려가며 차가운 보드카+크렌베리와 뜨거운 피치티+럼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휴양지의 비치에 드러누워 밤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 끝에 연락처를 나누거나 가끔만나 밥을 먹는 친구도 제법 생겼다.
재밌는 일이다.
강원도에서 날 기다리거나 경상도에서 내가 머물만한 친구집은 없는데
마이애미나 유럽 어딘가에 지낼 친구집이나
휴스톤, 아르젠티나에서 날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는 건.
한국에서의 나의 오리진은 철저히 오리엔트 메트로폴리탄(경기도 밖에 가면 친척도 친구도 별로 없는 스몰타운 인생)인데 반해
한국밖에서의 나는 그저 '빅' 인터내셔널이란 말이지.
한국에서라면 아주 오래 함께 하고나야 나올만한 얘기들이 얼마 안만난 이들과 얘기할때 불쑥 화두가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인종의 성향차이랄까.
가끔은 오버 프로액티브라 해야할까.
그 중 한가지가 '꿈'에 대한 얘기다.
주로 이게 화두일 때 난 상대를 설득하고 싶어하는 편이다.
꿈은 중요한 것이고,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다,가 주요 골자다.
꿈이 없는 인생을 한심하다 비웃을 순 없지만(현대 사회 절대다수가 그러하기에)
난 내 삶에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따름이기에 나를 둘러싼 내 지인들이 그러하기를 바랄 뿐.
하지만 때로 내가 만난 이들의 진솔한 얘기속에 문득 그들에게 내가 그저 철없게만 보이진 않는지,
혹은 진짜 나의 진심을 내가 알고 있는게 맞는지,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이 그저 게임같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될때가 문득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럴때면 내 머리속은 온통 이 문장으로 메워진다.
I feel guilty.
1. 빠리지앵
로열패밀리의 패밀리네임을 가진 벤자민(뉴욕 학교에서 만난, 비즈니스 석사 중)과
하프튀니지언 하프알제리안 라마(마이애미 비치에서 만난, 빠리대학 비즈니스 전공 마이애미에서 리얼에스테이트 인턴쉽 중).
모두 10년이상 빠리에만 산 빠리씨티즌.
벤자민은 놀라운 얘기를 했다.
프랑스에서 직업을 가질때 패밀리네임이 영향을 준다는.
이름이 곧 가문인지라 한미한 가문이나 이민자(모로코,알제리,튀니지등의 북아프리카)는 그 성이 달라 위로 올라서기 힘들다고.
자신도 이게 정말 어리석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유와 혁명의 나라, 흑인과 백인커플이 가장 자연스러운 나라,
오픈 마인드의 긍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람이 가장 많으며 누구든 권리를 부르짖는다고 생각했던
내 오랜 사랑 그녀, 빠리가 그 도도한 얼굴안에 오만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빠리는 나에게 남다르다.
내가 벤자민과 함께한 자리에서 빠리를 얘기할때 그곳에 모여있던 많은 미국애들과 콜럼비아를 위시한 라틴계는 물론
아시아계 애들까지도 몽땅 몽상에 젖게 할 수 있었다, 빠리는 정말 특별하다고.
그 자리에서 나는 빠리 홍보대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벤자민도 늘 누군가의 권리를 이야기 한다.
동물의 권리, 티베트인의 권리, 학생의 권리,, 내가 익히 아는 빠리지앵이다.
하지만 아마 그도 모를 것이다. 빠리지앵이나 빠리지앵이 아닌 자들의 권리를..
라마는 자신은 빠리지앵이지만 아로건트한 빠리지앵이 싫고 자신의 오리진은 아랍이라고 선그어 말했다.
그녀는 프렌치, 아라빅, 스페인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프렌치는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인턴쉽은 빠리가 아닌 이곳 미국을 선택했다고.
모로코에 프렌치만 사는 마을이나 빌딩이 있는데 자존심도 없고 돈만 알며 자신의 오리진도 잊고
프렌치가 되고 싶어하는 모로코인은 병신이라며 자주 비웃곤 했었다.
자신있는 요리는 튀니지식 타진이고 가장 리치한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이란이라고 생각한다고,
문화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럽의 강자 프랑스에서 온 그녀는 줄곧 아랍을 예찬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하고 게다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다만 나는 내가 늘 그렇게 제일 사랑한다고 외쳤던 빠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절대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저 오만한 얼굴의 빠리만이 내 가슴을 후벼파게 했을 뿐.
2. 블가리안
뉴로써젼1년차 불가리안 이보, 멘사와 올림프아이큐 소싸이어티 멤버. 수식어 필요없이 그냥봐도 천재다.
영어, 프렌치, 스페인어, 블가리안, 터키쉬, 그리스어를 구사하며, 한국어는 알아만 듣는다.
또 한가지.
한국드라마에 미쳐서 1000편이상 섭렵하신 나보다 한국 연예인을 많이 아는 드라마 천재시기도.
그래서 건물도 다른데 맨날 내 방에와서 죽치고 내 얼굴을 만지느라 정신이 없다.
그녀는 미국에서 학위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이곳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의사가 왜 되고 싶었는데?"
그녀는 대답했다. "못사는 나라 출신인 내가 성공하고 싶은데 믿을건 머리밖에 없었어"
나도 대답했다. "나의 가장 절친은 한국의 뉴로서젼이야. 녀석은 늘 본인이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얘기하지.
얼토당토 안한 얘기지만 녀석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정말 그 녀석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단 말야. 그래서 녀석이 말리로 떠났을 때도, 다시 인도에 갔을 때도 극구 말리지 못했어.
물론 잠깐만 있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굳이 받긴 했지만..ㅋㅋ
난 니가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있잖아.
한국말에는 직업이름끝에 '선생님'이 들어가는 희귀한 직업이 몇개 있는데 의사는 그 중 하나야.
존경받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지. 너의 좋은 머리로 너가 스타트업을 했으면 넌 이미 엄청난 돈을 벌었을거야.
넌 분명 더 의미있는 사람이 될거야."
얼마전 집에 다녀온 그녀는 전문의와 인턴을 수료한 후 불가리아 국립병원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의학으로 한획을 그었었던 자국의 명성을 찾을때까지 그 안에서 의미있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고.
불가리아는 요구르트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나는 10년전 불가리아에서 환전사기를 당하고 경찰에 체포되었었던 황당했던 사건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에 그녀는 화폐개혁쯤에 많은 일이 있었고 니가 그 중 하나였을거라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자신의 나라가 못살고 어렵지만 계속 나아지고 있는 중이니까
내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불가리아를 다시 여행한다면) 분명 어메이징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돌아온 그녀의 눈빛은 분명 바뀌어 있었다.
덩달아 내 가슴도 두근두근 뛰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녀의 나라로 돌아가면 나는 불가리아를 다시 한번 여행할 예정이다.
그 '어메이징한' 추억을 만들러.
마이애미 비치에서 만난 불가리안 린.
학회기간 일주일 남짓한 해변 우정(학회 틈틈히 사우스비치에 가서 놀았다ㅋㅋ 그러다 우연히 만났다)에
믿을 수 없게 친해진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 난 라스베가스 컨퍼런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이애미에 다시 들렀다.
칵테일 한잔을 마주하며 그녀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불가리안, 그릭, 문법파괴 영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그녀는 아마도 불법체류 중인듯 보였다.
취업을 하기위해 여러방면으로 힘쓰고 있지만 취업비자가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건 많지 않았다.
시간당 9달러의 파트타임 잡들이 대부분이고 그 마져 나쁜놈은 떼어먹을 수도 있는(도큐먼트가 없으니까) 일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6년간 웨이트리스를 했어. 내 삶은 나아지질 않아. 뭐든지 부족한 내 나라 때문이야."
나는 대답했다. "니가 잘하는 일이 있잖아. 헤어디자이너, 네일아티스트.
지난번 내가 마이애미에 왔을 때 니네집에서 니가 해준 머리와 네일은 환상적이었어."
"웨이트리스 말고 니가 원하는 일을 해봐. 지금의 너는 어리지만 인생이 생각처럼 길지 않아.
시간이 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그녀는 말했다. "웨이트리스 말곤 난 아무일도 할 수 없어. 아무도 내게 그런 일을 주지 않아.
불가리아로 돌아가는 건 싫어. 우리나라는 정말 못살아.
난 그냥 지금 이대로 여기서 하루하루 살거야.
그리고 미국남자랑 결혼할거야. 누구라도 상관없어.
일단 영주권을 얻은 다음 그 다음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수 밖에 없어."
나는 대답했다. "나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계속가면 안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몇년을 그냥 흘려보낸 일이 있지.
물론 아주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떤 의미에선 내가 시간을 쓸모없게 쓰던 시절이었음은 분명하지.
많은 사람들이 너와 같아.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그냥 살아.'
방법이 없다고 하거나 지금 그게 최선이라고만 하지.
그러는 동시에 만족하지 못하고 벗어나고 싶어하고.
하지만 니 스스로 깨지 않는다면 넌 죽을때까지 달라지지 않을거야. 정말 죽을때까지야. 그렇게 살다가 끝나야되.
혹여 니가 돈많은 남자를 만나 인생이라도 역전(어떤 의미에서건)한다 쳐도 넌 그냥 너야.
포르쉐를 탄 남자가 '자.. 내 옆에 탈래?'해서 탔는데 어느순간 '자..이제 내려라' 그러면 내릴래?
꿈은 그런게 아니지 않을까? 니가 통제 가능해야 그게 니 꿈이지."
그녀는 얘기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때 같이 살던 애는 러시아애였어.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진짜 인형처럼 생겼었지.
우리가 드레스업하고 링컨로드를 걸을때면 남자들이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어.
결국 어느날 그녀는 링컨로드의 어느 레스토랑에 갔다가 미국인 의사를 만났지.
인형같은 그녀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었어. 한달정도 데이트 하고 난 후 그녀는 그 남자의 집으로 옮겨갔어.
그리고 지금까지 1년을 그 남자와 지내고 있어. 얼마전에 그녀를 거리에서 다시 마주쳤는데
아직도 영어를 잘 못하더라. 하지만 옷이며 신발, 차까지! 모두 명품을 둘렀더라고.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지.
이제 그녀는 그 남자와 결혼만 하면 아주 완벽해져. 미국인에다 부자라니."
영어를 쓰는 미국인과 영어를 못하는 러시아인의 사랑이라니,
세상엔 내가 알수 없는 사랑도 있었다.
문득 난 그녀의 눈에 비친 내가 궁금했다.
그녀만큼 삶에 찌들어 보이지 않아 혹시 내가 설득하고 싶은 나의 의지가 현실모르는 애송이의 꿈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잘사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여행자 또는 유학생.. 그녀는 이 말을 이해할까.
6년간 웨이트리스로 살아보지 않았고, 마이애미에 놀러 온 유학생, 으로만 이해하고 있을까.
머리속에 I feel guilty..가 떠나질 않았다.
더욱이 일을 그만둔지 보름이 되었는데 다음일을 못 잡아서 이번달 집세를 못내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 자리에서 내가 술값을 계산하는것 말고 무언가 다른일 해야한다는 일종의 압박마져 느껴졌다.
그래서 난 일생처음 개인적인 '부탁'이라는 걸 했다.
지난번 학회차 마이애미에 왔을 때 잠시 친분을 쌓은 호텔 앵거스의 매니져와 코럴 게이블스의 유명한 바의 바텐더(불가리안이라..)에게 연락을 했다.
컨시어지나 바텐더에 자리가 있냐고.
나는 그저 무엇인가 풀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내가 할수 있는게 있긴 있을까.
존귀하게 살아야한다고?
무엇을 설득할 것인가.
난 좀 더 살아야한다.
아직, 많은 것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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